시인과 술

 

시인과 술

 

김 관 후

 

“이제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막말로 최근의 시가 가슴에서 터져 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누구보다 술을 사랑하는 시인 고은이 어느 잡지에 쓴 글이다.

시인 고은은 뒤이어 어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마시면 행복하고 깨어날 때의 황폐함, 그 황폐함에 대한 자기 회한과 환멸, 연민, 허무와 함께 하기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그렇게 내 시는 씌어졌다. 나는 시인에게 깨어 있기보다 취해 있기를 권하고 싶다. 취기와 광기를 저버리는 것은 시인에게는 죽음이다.”

시인 고은의 술에 대한 언급은, 모든 예술가들은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는 보들레르의 주정 섞인 말과 동일 선상에 있다. 보들레르는 시 ‘취하시오!’에서 “지금은 취할 시간이다! 당신이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시오! 쉬지 말고 취하시오! 술로,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라고 노래한다. 또한 ‘연인끼리의 술’에서는 “오늘은 천지가 찬란하구나!/ 재갈도 박차고 고삐도 없이,/ 술 위에 걸터타고 떠나들 가자/ 거룩한 선경仙境의 하늘을 향해!”라고도 노래했다.

역시 술과 관련된 일화를 가장 많이 남기는 사람들은 시인들이다. 많은 시인들은 술이 주는 도취에서 시적 영감을 구했다. 그래서 시는 술이요, 소설은 안주라는 말도 있다. 시는 감성을 자극하여 취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시의 긍극적 목적은 자기정화, 카타르시스이다.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이라는 시집에 새겨 넣은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무엇에? 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 대로 취해야 한다.”라는 구절은 이제 너무나 유명해졌다.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 제임스 조이스, 스콧 피츠제럴드, 딜런 토마스 같은 이들은 정도가 지나치게 술에 탐닉했다. 우리 문학사에서도 변영로나 조지훈, 고은, 김관식, 김종삼, 천상병, 조태일, 박정만과 같은 시와 술에서 다함께 일가를 이룬 시인들이 있다.

김영승이나 함민복, 정병근, 혹은 이윤학 같은 시인들은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는 보들레르적 교양의 추종자들이다. 술은 그들의 눌린 감각과 관념을 펴주고 식은 기쁨을 뜨겁게 데워 주고 육체와 문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술을 마시면 취한다. 술이 불러오는 것은 취기, 혹은 명정(酩酊)이라고 부른다. 명정의 눈부심 속에서 불투명한 것들은 자명해지고 혼란스러웠던 것들은 질서를 되찾는다. 시인 천상병은 ‘주막(酒幕)에서’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라고 읊조리고 있다.

천상병은 비현실적 행복을 도취의 순간으로나마 누리게 하는 술이 있었기에 이 구질구질하고 악마적이며 진부한 세계조차 ‘선경仙境’으로 바라보게 하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귀천’)와 같은 대긍정과 화해가 가능했을 것이다. 술이 없었다면 김관식이나 김종삼, 조태일의 시세계가 과연 가능했을까. 그래서 술은 예술의 창조를 위한 자양분일지 모른다.

어떤 잡지에서 각계 명사들에게 우리 역사상 주선(酒仙)으로 꼽을 만한 술꾼들을 추천해달라고 해다. 그 결과 대부분 사람들이 시인이었다. 1위가 황진이, 2위가 변영로, 3위가 조지훈, 4위가 김삿갓, 5위가 김시습, 6위가 임제, 7위가 김동리. 모두가 시인이거나 시를 썼던 사람들이다. ‘시인과 술’이라는 말을 들으면 왜 ‘바늘과 실’의 관계가 연상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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