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추도비

독일의 베를린 도심으로 걸어가면 콘크리트 기념물이 있다. 전쟁의 비극과 학살의 기억을 품고 있는 홀로코스트 추도비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인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으로, 유대인학살 추모공원(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콘크리트 기념물은 무려 2,711기에 달한다.
제주시 충혼묘지 입구에는 9연대장 박진경(朴珍景) 추도비가 있다. ‘故陸軍大領密陽朴公珍景追悼碑’(고육군대령밀양박공진경추도비). 그 추도비의 비문내용 중에는 ‘제주도공비 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불행하게도 장렬하게 산화하시다’고 언급하고 있다. ‘30만 도민의 뜻을 모아’라는 구절은 그의 ‘30만 명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는 발언과 대조를 이룬다.
박진경은 일본군 출신이다. 제주도에 주둔한 11연대장 최경록(崔景綠), 9여대장 송요찬(宋堯讚), 2연대장 함병선(咸炳善), 제주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劉載興) 모두 일본군 지원병이거나 장교 출신이다. 이들의 연령은 평균 32세. 4·3이 진압된 1949년 봄까지의 사령관 대부분이 20대와 30대 초반이다.  
특히 박진경은 제주4·3당시 초강경 토벌을 통해 도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당사자이다. 제주4·3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김익렬을 밀어내고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며 딘(William F.Dean) 미군정장관의 명을 받아 강경토벌작전을 감행하였다.
그 후 박진경은 그 공로가 인정돼 대령으로 초고속으로 진급하였다. 딘 장군이 직접 제주를 찾아 계급장을 달아줄 정도로 미군정으로부터 신임도 두터웠다. ‘양민과 폭도의 구별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무조건 연행하였다. 하지만 1948년 6월17일 대령진급 축하연을 마친 박진경은 다음날 새벽 부하 문상길 중위 등에 의해 암살을 당한다. 그의 죽음은 육군장(陸軍裝) 제1호로 기록됐고 암살을 주도한 문상길 중위 등은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사형 집행 1호’로 기록됐다.
박진경 대령에 대한 평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군정보고서는 “조선의 부대장 및 야전지휘관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으로 평가되던 인물”(Hq.USAFIK.G-2 Periodic Report. No863. June 18. 1948)이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일부에서 그는 강경탄압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토벌 한 달 여 만에 포로를 무려 수천 명이나 잡아들였다.
박진경 추도비 앞부분에 누군가 돌로 찍어 놓은 자국이 남아있다. 4·3가해자를 철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처럼 보존하는 대신 구체적인 설명문을 세워 바르게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고향 경남 남해군 군민공원에도 1990년 그의 동상을 세웠다. 그 비문에는 “제주도민의 생명보호와 사태수습 명을 받은 공(公)은 불과 2개월 내 소위 공산반란 해방군 주력을 섬멸한 전공에 감탄한 딘 소장은 대령으로 승진시켰다. 그 후 산발적 폭동공비잔당 소탕 작전 중 불행히도 적의 흉탄에 장렬히 산화하셨다’라 씌여있다. 그는 지금도 창군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독일이 유대인학살 추모공원을 베를린 한복판에 만든 것은 학살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6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철저히 사과하고 반성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독일은 그동안 700억 달러, 우리 돈 약 80조 원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배상해왔다. 전쟁으로 상처를 준 이웃 나라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과는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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