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봉개동’

김종원(金鍾元)의 시 ‘봉개동(奉蓋洞)’은 1962년 ‘제주도’지에 발표된 작품이다. ‘타 버려싱게/ 아홉 살 적 풋대추 찾아 기어오르던/ 안마당의 대추나무도/ 타 버려싱게’로 시작해서, ‘글만 알고 곡식 모르던/ 툇마루의 버선발/ 꿈 심던 뒷마당의 죽순도/ 다 타버리고 어싱게’로 끝을 맺고 있다. 제주4·3으로 인하여 불타버린 고향마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인은 마을이 불타고 고향집이 불타고, 동네 식게집과 영장집 가마솥이 불 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며 가슴 아파한다. 가을이면 갈중이 풋감 물들이고, 겨울 한낮에는 돌담 눈길로 푹푹 하얀 눈이 내려 쌓였고, 큰 꼬리연 입김처럼 날리던 중산간부락 봉아오름은 모두 불타버렸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시인 김종원이 ‘봉개동’을 발표한 60년대 초반, 한국정치사는 숨 막히게 흘러가고 있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1961년 5·16군사정변은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입까지 봉쇄하였다. 감히 제주4·3을 이야기하거나 글로 쓰는 일은 ‘빨갱이 짓’이라고 통제되고 있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봉개동’은 탄생하였다. ‘혁명공약’을 달달 외우던 그 참혹한 어둠의 터널을 뚫고 어떻게 ‘봉개동’을 발표할 수 있었을까?

4·19혁명으로 논의를 시작한 4·3진상조사는 5·16군사정변으로 중단되는 불운을 맞았다. 유족들은 기나긴 세월을 연좌제라는 쇠스랑을 차고 살아가야만 했다. 군사정권은 그들이 자행한 반인륜적인 만행의 흔적을 없애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백조일손지지’ 묘비 또한 파괴되고 묘역을 해체하도록 강요받기도 하였다.

시인 김종원의 고향마을 봉개동. 일제강점기에는 명도암(明道菴)과 대나오름 등에 일본군이 갱도진지(坑道陣地)를 파놓았던 마을. 그 갱도진지가 4·3 당시에는 마을 주민들의 피신처로 이용되었다. 토벌대가 들이닥치자 일부 주민들은 오름으로 옮겨졌다. 주민들은 점점 위험을 느껴 낮에는 산 위나 다른 먼 곳으로 피신했다가 저녁이면 돌아왔다.

1948년 11월 20일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주민들은 인근 야산과 불타버린 집터에 움막을 짓고 피난살이를 시작했다. 다시 합동토벌대가 마을에 들이닥쳐 움막에서 숨어 지내던 주민들을 끌어내었다. 마을 주변에 숨어 지내던 주민 40여 명을 멀왓동산으로 끌고가 집단학살하였으며, 대토벌은 계속되었다.

그 해 2월 4일 육해공 합동으로 펼쳐진 대규모 작전으로 집단희생을 당했다. 당시 조선중앙일보의 ‘사살 360명 포로 130명 기타 의류 등 다량 압수’라는 보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희생자들은 대부분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마을은 쑥밭이 되었다. 토벌은 비행기와 로케트포, 박격포까지 동원하였으며, 압수품에 총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주민들은 성안에 함바집을 짓고 살았다. 마을재건이 이뤄졌다. 일본군 출신 함병선(咸炳善) 연대장이 주민들을 원거주지로 복귀시키는 사업의 일환이었다. 함병선의 성(姓)과 작전과장 김명(金明) 대위의 이름을 따서 마을이름을 ‘함명리(咸明里)’로 개칭하였다. 마을 재건 당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 이름도 ‘함명교회’였다. 제주도 거의 모든 중산간마을이 그러하듯 시인의 고향마을 ‘봉개동’은 이처럼 쓰라린 역사를 품고 있다.

‘봉개동’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할아버지는 오척 단구/ 술 담배 입도 못 대신/ 대쪽 같은 선비/ 집 한 채 다 타고 잿더미만 남던/ 사삼사건에도/ 눈시울 한번 안 젓시더니// 안반 다락/ 이불 베개 삼던 한서적(漢書籍) 다 타고/ 불꽃 되어 날을 땐/ 손주처럼 발을 구르신/ 김해김씨(金海金氏) 문중의 어른/ 아, 그 법 없이도 살 수 있던/ 내 할아버지는/ 지금 봉아오름을 더나고 어싱게// 타버려싱게/ 글만 알고 곡식 모르던/ 툇마루의 버선발/ 꿈심던 뒷마당의 죽순도/ 다 타버리고 어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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