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과 제주

[제주일보] ‘여순’은 여수와 순천을 말한다. ‘여순항쟁(麗順抗爭)’은 과거 ‘여순반란’ 혹은 ‘여순봉기’라고 불렸다. ‘여순항쟁’도 ‘거창양민사건’이나 ‘제주4․3항쟁’, ‘5․18항쟁’처럼 국가폭력이 부른 불행한 역사이다. 수만명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그 사건을 ‘반란’으로 왜곡해 온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우리는 조선인민의 아들들이다…… 모든 애국 동포들이여! 조선인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짓을 거부하고 제주도 파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당시 제주출동거부병사위원회의 성명서 내용 중 일부이다.

‘제주4․3항쟁’은 특별법 제정으로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여순항쟁’은 왜곡된 채 방치되고 있다. ‘여순항쟁’은 ‘제주4․3항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 여순사건유족회는 여순사건도 제주와의 지역차별이 아니라면 민족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단독 특별법을 공약하고 제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여수 주둔 14연대의 군인 2000여 명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주목할 것은 출동을 거부하는 일부 군인들만이 일으킨 싸움이 아니었다. 지역 민중들이 함께 깃발을 들었다. 항쟁은 순식간에 순천·광양·구례·보성·고흥·곡성 등 전남 동부지역으로 확산됐다. 민중의 뿌리는 제주에서처럼 고립되지 않았다.

여순사건으로 반란군에 의해 경찰 74명을 포함해 약 150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진압 군경에 의해 2500여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다.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 만에 일어난 여순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철권통치와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하였다. ‘여순항쟁’은 제주4․3에서 중요한 이음줄이었다. 제주도의 초강경 진압작전인 ‘초토화 작전’을 더욱 강화하는 데 디딤돌이 되었다. 미군정으로부터 한국정부로 계승된 ‘빨갱이 소탕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제주4·3항쟁을 무차별적인 공세로 진압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로서는 윤리적 비난을 해소하고 자신들의 전략을 지속, 강화할 수 있는 호재로 삼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우리 겨레의 가슴에 아픈 역사로 남아 있지만, 이처럼 ‘여순항쟁’은 제주4·3과 그 뿌리가 닿아 있다. 고립무원의 섬에 갇힌 제주 민중을 지지하고, 통일조국을 염원하면서 일으킨 의거란 점에서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반란’이 되려면 수도 점령이나 정부 전복, 권력자 축출 등의 계획과 새로운 권력주체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과거 ‘여순반란’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덧씌우고, 여수와 순천을 ‘빨갱이 동네’로 매도하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였다.

해방 후 찾아온 것은 두 동강 난 분단국가였다. 해방의 감격은 잠시일 뿐, 커다란 절망과 좌절의 불씨를 삼킨 서러운 민족이 되고 말았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대한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이승만 체제는 불안하기만 했고 위기가 심화될수록 민중저항은 거세졌다. 제주4·3과 ‘여순항쟁’은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한 처절한 민중적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과거 대통령을 일러 ‘공공의 적’이라 하고 ‘유신헌법’을 두고 잘못됐다 비판하면 곧바로 ‘빨갱이’ 또는 ‘좌빨’ 딱지를 붙였다. 그렇다. 과거 빨갱이 증오정치는 ‘빨강’(赤)이라는 색깔에서 출발한다. 이 색깔은 ‘주의자’(主義者), 더 좁게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가리키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의미가 완전히 열린 채 부정적 낙인으로 기능한다. ‘빨갱이 사상’은 불온하고 위험한 것이 되었다. 사상을 통제하고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체제가 성립되었다.

헌법상 보장되는 ‘결사’나 ‘집단구성’이라 하더라도 당국이 그 구성원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결사의 목적에 사상의 흔적이 있다고 판단하면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상에 대한 우려와 의심, 처벌이야말로 ‘빨갱이’를 양산했다. 그 중심에 제주와 ‘여순’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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