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한문용의 ‘엄니’

[제주일보] ‘최후의 아픔 딛고/ 언제나 그랬냐는 듯 다시 쇠무릎을 폈습니다./ 기 쇠한 지 한참 되었어도/ 여요(餘饒)로운 당신 눈빛은/ 평상 일상이셨습니다// 관절이 두 번 끊어지는 아픔에도/ 홀로 서기 여섯 해/ 귀가 닫혀도/ 엄니 가슴은 별처럼 뜨겁습니다’

-시인 한문용의 ‘엄니’ 중에서.

제주시인 한문용(韓文鏞)의 사모곡은 절절하다. 왜 시인의 어머니는 하늘에 송송 떠있는 별을 세고만 있을까?

그의 시집 ‘서우봉 노래’를 다시 펴들고 어머니를 ‘엄니’로 부르는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시인의 어머니 현명석(玄明錫) 여사는 남편 한재진(韓在珍) 선생과 사별하자 아들을 홀로 키웠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으로 정뜨르비행장에서 학살당하고 시신조차 찾지 못한 상태이다.

당시 수재들이 입학한다는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현명석 여사는 올해 아흔이며, 치매로 병원을 전전하다 요양원으로 옮긴 상태다.

‘예비검속’은 범죄 방지의 명목으로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 구금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요시찰인에 대한 일제 검거가 이루어졌고, 제주읍과 서귀포‧모슬포 경찰서에 검속된 자들에 대한 군 당국의 총살 집행이 이루어졌다.

제주읍‧조천면‧애월면 예비검속자에 대한 총살 집행은 두 번에 걸쳐 실시되었다.

처음 집행은 1950년 8월 4일. 제주경찰서‧주정공장 등지에 수감되어 있던 수백명을 제주항으로 끌고 가서 배에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로 가서 수장시켰다. 두 번째 집행은 1950년 8월 19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실시되었다. 주로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들을 트럭에 싣고 제주비행장으로 끌고 가서 총살시켜 암매장하였다.

시인 한문용의 할아버지 한백흥(韓佰興) 역시 4․3 당시 총살당하였다.

시인의 운명과 빼닮은 ‘만다라(曼茶羅)’의 작가 김성동(金聖東)의 삶. 작가의 아버지 김봉한은 박헌영의 비선(秘線)이었으며 1948년 예비검속됐고, 1950년 역시 총살당했다.

작가의 어머니 한희전은 여성동맹위원장으로 활동했고 모진 고문에 옥고까지 치렀다. 작가의 단편 ‘민들레꽃반지’는 치매에 걸려 여맹위원장 시절 노래를 부르며 남편이 선물한 민들레꽃 무늬 반지를 정성껏 닦던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김성동이 네 살 때인 1948년 12월 중순 무렵.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지 석 달 후였고, 제주4․3이 일어난 지 여덟 달 만이었다. 아버지 김봉한이 아들 김성동을 보기 위해 집(충남 보령)으로 숨어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잠복하고 있던 경찰이 아버지를 덮쳤다. 서울시경 특별경찰대 소속이었다. 우익 서북청년단원들이다. 4․3항쟁 당시 양민들을 학살한 공로로 특경대에 뽑힌 서북청년단원들의 행태와 빼닮았다. 김봉한을 비롯한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한 장소는 대전 산내면 낭월리 골령골이다.

대전형무소 역시 제주 출신 ‘1949년 군법회의’ 대상자 300명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한국전쟁 이후 제주에 살아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전쟁 발발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제주4․3사건, 여순사건 등과 관련된 정치사상범과 일반 죄수 등 4000명 정도가 수감되어 있었다. 이들은 예외 없이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당했다.

시인 한문용의 ‘엄니’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하고 있다.

‘도무지 하해(河海)와 같은 그 마음 헤아릴 길 없습니다/ 영욕의 세월 살았어도/ 엄니께 허무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지금/ 엄니는 하늘에 송송 떠 있는 별을/ 하나 둘 세고 있을 겁니다’

-시인 한문용의 ‘엄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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