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2002호 ‘지영록’

“진시쯤에 화북소에 들어와 정박하였다. 판관 이하 영목의 사람들과 이속들이 모두 후선머리에 왔고, 구사(舊使)는 포구에 내려온 지가 벌써 며칠이 되었다. 나는 포촌에 머물며 편히 쉬었다. 잠시 후 드디어 성에 들어갔는데 서로 거리가 10리 남짓하였다.”
야계 이익태(李益泰, 1633~1704)가 제주섬에 도착한 것은 1694년 6월 29일이다. ‘지영록(知瀛錄)’은 당시 제주의 실상을 일기체로 기록한 글로 수고본(手稿本)으로 작성됐다. 그의 후손들이 제주박물관에 기증했다.
‘영(瀛)’은 ‘영주(瀛州)’를 의미하는데 이는 제주의 옛 지명이다. 1997년 제주문화원이 번역·출간했다.
이익태는 1694년 7월부터 1696년 9월까지 제주목사를 역임했다. ‘지영록’은 그가 제주의 풍물들을 시문(詩文)을 곁들여 기록한 책이다. 제주도의 최초 인문지리지다.
특히 외국인의 표류 상황에 대한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 해양교류사, 표류민 송환 체제,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1687년 8월 ‘김대황’이라는 제주도민이 출항한 이후 파도에 휩쓸려 베트남에 이르렀다가 귀국한 내용인 ‘김대황 표해일록(金大璜 漂海日錄)’은 조선 시대 베트남 관련 기록으로 희소성이 있다는 평가다. 2011년 제주문화원은 ‘지영록’을 재발간하기도 했다.
향토 사료에도 ‘스테디셀러’가 있다. 초판을 펴낸 이후 책을 구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제주 정착민 증가와 맞물려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리라.
제주문화원의 ‘스테디셀러’가 어디 ‘지영록’뿐인가?
1994년 창립 이래 제주지방사 관련 향토 사료가 60여 권에 이른다.
1996년 김윤식(金允植, 1835~19 22)의 ‘속음청사(續陰靑史)’를 시작으로 1997년 ‘지영록’, 그리고 지난해 김석익(金錫翼, 1885~1956)의 ‘역주 탐라기년(譯註 耽羅紀年)’까지 묵직한 번역서들이 주류를 이룬다.
‘속음청사’는 운양 김윤식이 자신이 체험한 사건들을 기록한 한문 일기다. 제주로 유배온 1897년 12월부터 이재수의 난이 발생해 1901년 7월 전남 무안군 지도(智島)로 이배되기까지의 기록이 촘촘하다.
제주에서 겪었던 방성칠·이재수의 난에 대한 기록만이 아니라 당시의 국내·외 정세, 제주도 유배인의 생활, 부패한 관료의 행태 등이 담겼다.
또 석우 김경종(金景鍾, 1888~19 62)의 ‘백수여음(白首餘音)’은 4․3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히고 있다.
무자년 제주4․3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 경찰 당국과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지적한 ‘이승만에게(與李承晩書 己丑)’, 경인사변 직후 이승만 대통령을 성토한 ‘이승만 성토문(李承晩聲討文 庚寅)’등이 눈에 띈다. 사사로이 목숨을 보전치 않으려는 곧은 절개가 드러나 보인다.
그동안 문화재청은 유형문화재 가운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을 ‘보물(寶物)’로 지정해왔다. 지금까지 2000여 건이 넘는다. 이번에 ‘지영록’을 대한민국의 보물 2002호로 지정·발표했다. 현재 제주에는 국가 지정 보물 7개가 있어 ‘지영록’이 확정돼 총 8개 보물을 보유하게 된다. 기존 보물 7개는 제주관덕정, 제주불탑사5층 석탑, 탐라순력도, 안중근 의사 유묵, 예산 김정희 종가유물 일괄, 최익현 초상, 제주향교 대성전 등이다.
“계유(癸酉·숙종 19년 1698) 7월 26일 왜인 3명이 대정현경 차귀소(大靜縣境 遮歸所) 연변에 표박했다가 두모촌 사람 집에 뛰어 들었다. 머리는 죄다 깎았는데 양쪽 머리 사이에만 약간의 머리털을 남겨서 머리통 뒤에 고리를 지어 묶었다.”
‘지영록’ 끝부분의 ‘표왜인기(漂倭人記)’에서 뽑아봤다.(제주일보| 승인 201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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