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과 여성 피해

“밤이면 인공기/ 낮에는 태극기/ 오라고 오고, 모이라면 모이고/ 가라면 가고, 그러다 죽으라면 죽음의 길로/ 가는 나그네// 아버지여, 삼촌이여, 누이여/ 아아, 스무 살의 나의 누이여/ 토벌대 최 상사의 폭행에 항거하다/ 총살당한 감산리 땅 우리 누이 강명옥!/ 1949년 2월 4일(음력)/ 스무 살 나이로 아깝게 죽은 나의 누이여!”
 시인 김용해의 ‘감산리 누이여’의 마지막 부분이다.
제주4․3으로 인한 여성들의 피해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2중, 3중의 고통을 반영한다. 강명옥은 스무 살 감산리 처녀. 그의 집에 주둔했던 ‘최 상사’가 처녀를 겁탈하려다 반항하자 총을 쏘았다. 강명옥은 군인의 겁탈을 죽음으로 막았다.
4․3 당시 남성 못지않게 여성의 피해는 다반사(茶飯事)였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보면 제주4․3 민중봉기 전후에 서북청년단 등이 자행한 여성들에 대한 만행은 상상할 수가 없다.
여성 피해자들의 증언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가 여성들의 피해를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이 피해자의 위치에서 만이 아니라 제주4․3의 주체로서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페미사이드(Femicide)’는 여성(Fe male)과 살해(Homicide)를 합친 용어다. 범행 동기나 가해자와 상관없이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여자라는 점을 노리고 살해하는 것이다. 인종 또는 민족에 대한 말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에 빗대어 만든 신조어이다.
페미사이드는 일반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이 심한 불평등 사회일수록 많이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완력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달리는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애·동거·혼인 상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가리켜 페미사이드라고 정의한다.
197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여성 대상 범죄 국제재판에서 여성학자 다이애나 러셀(Diana E. H. Russell)은 페미사이드에 대해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이 용어를 공식적으로 정의한 바 있다.
제주4․3중앙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는 현재 1만4233명이다. 그 중 남자가 1만1251명이고 여자가 2982명이다. 그러나 이 숫자를 4․3 사건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할 수는 없다. 아직도 신고하지 않았거나 미확인 희생자가 많다. 특히 10세 이하 어린이와 61세 이상 노인이 전체 희생자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여성의 희생자는 20%를 넘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김용해의 시 ‘누이에게’는 이렇게 전개된다.
 “단단한 돌멩이로/ 슬픔을 눌러놓고/ 단단한 돌멩이로/ 아픔도 눌러놓고/ 당당하게 바람 받고 섰는 누이여// 모든 풀들이 다 누워도/ 혼자서 벌판에 우뚝 선 누이여// 바위같이 뻔뻔한 총칼 앞에도/ 감옥처럼 차가운 권력 앞에도/ 돌보다 작은 가슴 열고/ 당당하게 선 누이여/ 4․3의 누이여”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왜 죽어가는 지도 모르면서 죽어갔다.
미국을 모르고, 미국의 세계 전략도 모르고, 섬 주민들에게 몰살을 몰고 온 4․3은 도무지 이해불능이었다.
그들은 제주도의 8할을 붉은 색으로 칠해 ‘붉은 섬’이 라고 명명했는데, 그 붉은 색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 대량학살을 그들은 ‘빨갱이 사냥’이라고 불렀다. 거기에 연약한 여성의 신음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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