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문학이여!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시 ‘절정(絶頂)’이다. ‘절정’의 배경은 위기감이며 극한(極限) 의식이다. 동시에 그에 맞서고 있는 주체의 결연한 의지와 초극(超克)의 자세이다.
그것은 상황의 열악함에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불퇴전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해 보려는 숭고한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 an Swift)는 1975년에 죽어 세인트트릭 성당에 묻혔다.
벽면에는 그가 직접 쓴 다음과 같은 라틴어 비문이 새겨졌다.
‘신학박사이자 이 성당의 참사회장인 조나단 스위프트의 시신이 이곳에 묻혀 있다. 이제는 맹렬한 분노가 더 이상 그의 마음을 괴롭힐 수 없으리라. 나그네여, 떠나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전력을 다해 지고의 자유를 얻으려 한 이 사람을 본받으시오.’
흔히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의 작가로 알려진 조나단 스위프트는 영국 문학사뿐만 아니라 서구 문학사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탁월했던 풍자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그가 지녔던 극단적 분노에 대한 문학적 표출 방식으로서의 풍자라는 장르를 선택하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분노는 언제나 나쁜 것일까?
“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지닌다. 정의에서 나오는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지만 성전을 더럽힌 장사꾼과 환전상들에게는 의로운 분노로 정화시켰다.
문학은 시대적 아픔의 표현이다. 문학은 사회적 약자들의 분노를 승화시켰을 때 생명력을 획득한다. 분노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비굴하게 굴복하기만 했던 권력에 덤벼들 용기를 주기도 한다.
러시아혁명은 “차르 폐하, 국민들이 굶고 있나이다, 식량을 주소서, 충성으로 섬기겠나이다”라고 애원하던 국민들에게 총질을 해대자 분노한 백성들이 일으켰다.
시인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분노의 절정에 도달한다. 세계가 제국주의의 땅따먹기 각축장이 되어버린 현실을 직시한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 정권의 실체와 탐욕의 정치, 전국에서 불었던 저항의 바람을 시에 기록한다.
제주도에서 자행된 살육, 해방 후 평화의 시대가 아닌 폭력의 시대를 다시 맞이해야 했고 그에 거침없이 저항했던 우리나라의 근대사와 민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민중의 역사 안에는 도저히 눈으로 볼 수 없고 입으로 담을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참혹한 죽음과 쓰라린 상처들이 하나하나 꽂혀 있다. 피로 얼룩진 1948년 4월 3일에 자신의 젊음을 고스란히 세워두었다. 두려움보다는 역사의 진실과 민중들의 장엄함이 그의 용기이자 힘이었다.
제주4․3항쟁의 진실을 알렸던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과 함께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아 ‘촛불혁명’과 함께 다시 주목되었다.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한라산’은 더 깊숙한 숲으로 안내하듯 ‘제1장 정복자’부터 ‘2장 폭풍전야’, ‘3장 포문을 열다’, ‘4장 불타는 섬‘에 걸쳐 뜨거운 항쟁의 역사가 서사적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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