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을동

詩(시)로 읽는 4․3(24)

곤을동
현택훈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지
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서 곤을동
안드렁물 용천수는 말없이 흐르는데
사람들은 모두 별도천 따라 흘러가 버렸네
별도봉 아래 산과 바다가 만나 모여 살던 사람들
원담에 붉은 핏물 그득한 그날 이후
이제 슬픈 옛날이 되었네
말방이집 있던 자리에는 말발자국 보일 것도 같은데
억새밭 흔드는 바람소리만 세월 속을 흘러 들려오네
귀 기울이면 들릴 것만 같은 소리
원담 너머 테우에서 멜 후리는 소리
어허어야 뒤야로다
풀숲을 헤치면서 아이들 뛰어나올 것만 같은데
산 속에 숨었다가 돌아오지 못하는지
허물어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돌아올까
송악은 여전히 푸르게 당집이 있던 곳으로 손을 뻗는데
목마른 계절은 바뀔 줄 모르고
이제 그 물마저 마르려고 하네
저녁밥 안칠 한 바가지 물은 어디에
까마귀만 후렴 없는 선소리를 메기고 날아가네
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서 곤을동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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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坤乙洞)은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 화북천 지류를 중심으로 밧곤을, 가운데곤을, 안곤을로 나눠진다. 고려 충렬왕 26년(서기 1300년)에 별도현(別刀縣)에 속한 기록이 있듯이 설촌된 지 7백년이 넘는 마을이다. 주민들은 농사를 주로 했으며, 어업도 겸하면서 43호가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평화로운 이 마을에 비극이 찾아왔다. 1949년 1월 4일 오후 3~4시께 국방경비대 제2연대 1개 소대가 마을을 포위했다. 군인들은 안곤을과 가운데곤을의 집집마다 불을 붙이며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젊은 사람 10여명을 안곤을 바로 앞 바닷가로 끌고 가 총살했다. 또 살아남은 젊은 남자 10여명을 5일 화북동 동쪽 바닷가인 연대 밑 ‘모살불’(현재 화북등대) 해안에서 총살했다. 이후 군인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밧곤을 28가구도 불에 태워 없애버렸다. 이로써 오랜 세월 삶을 영위해오던 67호의 적지 않던 마을이 하루 사이에 한꺼번에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곤을 마을 사람들은 인근 ‘새곤을’(현재 화북1동 4047번지 일대)로 이주해 움막 등을 지어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다. (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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