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우수(憂愁)’, 르 클레지오의 새벽바위

광치기해변은 르 클레지오(J.M.G. Le Clézio)가 ‘새벽바위(Rocher de laube)’라 일컫는 성산일출봉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천연하도록 아름다운 해변이다. 파도가 미친 듯 몰아칠 때는 범접하기 어려운 곳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바람이 잦아들며 바닷물이 물러남 그 자리에 드러난 초록빛 너럭바위 해변은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광대한 평화로움 그 자체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는 제주섬에 머물면서 직접 취재, 집필한 < 제주기행문>을 유럽 최대잡지 『지오(GEO)』 창간30주년 기념특별호(2009.3)에 ‘제주매력에 빠진 르 클레지오’란 제목으로 게재함으로써, 제주에 대한 ‘이유 있는 사랑’을 드러냈다.
그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유목민 작가’답게 성산일출봉에서 인도양의 모른 봉을, 당신(堂神) 조각상에서 마르키즈 제도 폴 고갱 무덤 앞의 오비리 조각상을, 돌탑 꼭대기의 수리 형상에서 멕시코 중부 푸레페차 원주민 마을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 머물렀던 그는 2007년 처음으로 제주에 발을 디뎠다. 지금도 전 세계를 여행하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그가 유독 제주와 해녀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은 작가가 여덟 살 때 지오그래피 매거진에서 본 해녀에 관한 기사였다. 맨몸으로 특별한 장비도 없이 바다에 들어가 전복이며 문어 등을 채취하는 여성의 모습은 소년에게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수십 년이 지나 제주섬에 온 그는 비로소 해녀를 실제로 보게 되었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프랑스 태생 르 클레지오. 그의 선조들이 대를 이어 둥지를 틀었던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 공화국(Republic of Mauritius)은 정신적 모태이자 문학적 고향. 프랑스의 저명 작가가 한국을 소재로 글을 쓴 것은 1901년 6월 서울을 방문한 피에르 로티(Pierre Loti)의 < 서울에서>란 글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르 클레지오는 ‘제주’에서 ‘모리셔스’를 발견했고, 그것은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의 동질성뿐 아니라 4․3의 아픔이 아직 살아있는 제주와, 과거 열강의 식민지로서의 슬픔을 간직한 모리셔스의 역사적 동질성에 공감한 것이다. 그가 제주섬과 모리셔스를 ‘자매섬’으로 표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포록과 검정. 섬의 우수(憂愁)를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남한을 뒤흔들고 한라산을 생성한 마지막 화산 폭발로 바다에서 솟아오른 화구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설날 햇빛은 그들이 일 년 내내 간직한 상서로운 일들을 가져올 것이다. 이 바위는 다른 터, 모리스 섬의 모른(Morne) 바위를 내게 상기시킨다. 풍경은 같은 비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48년 9월 25일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마을사람들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것,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모리스 섬의 모른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불쑥 나온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군인들이 도착하는 걸 보았을 때 – 사람들은 군인들이 노예들의 해방을 알리러 가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총을 들고 사람들을 해방하러 가겠는가? – 그들은 허공에 몸을 던졌다.”-르 클레지오의 < 제주기행문> 중에서(『지오(GEO)』2009년 3월호).

4․3당시 성산포 사람들을 끌고 와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그 바위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 민병대는 잡아온 주민들을 혹독하게 고문하다가 대부분 총살했는데, 그 장소가 성산포 ‘터진목’과 ‘우뭇개동산’이다.
르 클레지오는 1948년 학살사건이 일어난 성산일출봉에 올라 노예들의 봉기가 일어난 모리셔스의 모른 바위를 떠올렸다. “이제 잔인했던 과거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 피를 마신 모래 위에서 뛰놀고 있다”고 말한 그는 “감동적이면서도 끔찍한 4·3이야기는 슬프면서도 동시에 섬에 스며든 생존의 열망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고백했다. 르 클레지오는 제주를 정의하는 키워드로 ‘insularity’란 단어를 선택했다. ’섬나라 근성‘이 아닌 ’고립‘, ’근원적인 섬의 모습‘이란 의미에 가깝다. 그는 제주도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는 제주도와 그의 고향인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와 동질감을 여러모로 느낀다고 했다.
르 클레지오는 “나의 정신적인 고향은 모리셔스섬이며 여전히 나의 국적도 모리셔스다”고 할 만큼 ‘섬의 시람’이다. 그는 모리셔스섬을 사랑한 것만큼 그는 제주섬을 사랑한다. 모리셔스섬 사람들이 그 섬의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서 핍박당한 아픔이 있듯이 제주섬에도 그 같은 아픈 역사가 있었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의 동부, 인도양 남서부에 있는 섬나라이다. 자연도 제주도와 비슷하다. 화산 폭발로 인해 생성된 섬으로 추정된다. 유럽인들이 이 섬을 발견했을 당시 이 섬은 무인도였다. 대한민국과는 1971년, 북한과는 1973년에 동시 수교하였다. 2017년 르 클레지오는 소설집 『폭풍우』(원제: Tempete: Deuxnovellas)를 출간하였다. 그 첫머리에 “제주 우도의 해녀들에게”라는 헌사가 붙었다.『폭풍우』는 제주가 아름다운 섬일 뿐만 아니라 4․3의 상처와 고통을 지닌 곳이라는 걸 에둘러서 이야기하는, 서정적인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르 클레지오는 2007년 처음으로 제주에 발을 디뎠다. 그가 유독 제주와 해녀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녀뿐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과 가슴 아픈 역사 등 제주의 정체성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이 그의 정신적 모태이자 문학적 고향인 모리셔스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그 에게 제주섬은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는 땅”이며 “확신의 땅이라기보다는 감성의 땅”이다. “제주도는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자연을 갖고 있는 섬”이라고도 했다.

“성산일출봉을 보고 있노라면 마다가스카르 동쪽의 화산섬 마우리티우스의 모른 봉이 떠오른다. 똑같은 비극을 담고 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4·3사건 때 민병대에 끌려온 성산 마을 주민들이 죽어가면서 봤던 바로 그곳이다. 마우리티우스의 모른 봉은 반란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솟아오른 봉우리 끝까지 기어올라 허공에 몸을 던진 곳이다.”-르 클레지오의 < 제주기행문> 중에서(『지오(GEO)』2009년 3월호).

르 클레지오는 “제주기행문”에서 하멜의 표류에 대한 상상부터 성산일출봉, 돌하르방, 샤머니즘, 4․3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제주인의 아픔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4․3광풍이 온 섬을 휩쓸던 시절, 어디 하나 상처를 입지 않은 마을이 없었다. 성선포도 그랬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해안에서 벌어진 처참한 슬픔과 분노의 역사는 시간과 더불어 뇌 속에서 과연 사라질 것인가? 4ㆍ3 당시 민병대에 끌려온 주민들이 죽어가면서 봤던 바로 그곳이다. 마우리티우스의 모른봉은 반란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솟아오른 봉우리 끝까지 기어올라 허공에 몸을 던진 곳이다.
4․3사건은 1947년을 기점으로 1954년까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어디 그 뿐인가? 성산포경찰서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들에 대한 수장(水葬)은 1950년 7월 29일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성산읍에서는 약 445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중에서 200명 이상이 터진목에서 학살되었다.
성산포 터진목에는 ‘제주4․3성산읍희생자위령비’가 일출봉을 등지고 서있다. 그 곁 바다 쪽으로 ‘제주매력에 빠진 르 클레지오’에서 발췌한 글귀가 음각되어 있다. 기념비는 가로 1.7m, 세로 0.8m, 높이 0.4m 크기로 표면이 곳선 형태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 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읽은 시인 강종훈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그의 시 한편 한편이 그 9월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르 클레지오의 < 제주기행문> 중에서(『지오(GEO)』2009년 3월호).

“새가 날아가다가 아름다운 곳을 찾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매일 오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제주를 찾았습니다.” 르 클레지오는 자신의 제주 방문을 새의 비행에 비유했다. 아름다운 곳을 방문하게 되면 또다시 마음이 끌려 찾게 되듯이 제주는 그러한 땅이라고 말했다. 그가 제주도의 매력에 빠진 것은 시인 강중훈을 알면서다. 강중훈 시인을 통해 제주의 비극적 역사인 4·3을 체험할 수 있었고, 제주최고의 절경 가운데 하나인 성산일출봉을 만났다.
2007년 11월 8일, 시인 강중훈이 운영하는 민박 ‘해 뜨는 집’에 프랑스 제5채널 TV제작진이 르 클레지오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해 1월 18일부터 1월 22일까지 그는 ‘해 뜨는 집’을 다시 찾았다. 이처럼 시인 강중훈과 르 클레지오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그 후 시인 강중훈은 국제PEN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2013년 6월 3일 모리셔스 공화국을 찾았다. 제주섬과 모리셔스섬은 ‘형제’처럼 닮았음을 확인하기 위한 걸음이다. 흑인 노예들이 섬 문화를 일궜던 모리셔스 공화국은 제주섬 못지않게 천혜의 자연과 역사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 말고도 제주가 이어도라는 이상향을 꿈꾸듯, 그곳 역시 유토피아를 꿈꾸던 정서가 맞아떨어진다고 느끼고 싶었으리라. 모리셔스의 주민들도 오랜 시간 핍박 받으며 살아온 아픈 역사가 제주사람들과 너무 닮았음을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시인 강중훈이 시 「섬의 우수」를 써내려갔는지 모르겠다.
“여기 가을 햇살이/ 예순 두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핏덩이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 건진/ 수수깡 같은 노파 잔등 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거북이 등짝 같은 눈을 가진 우리들이 바라보네/ 성산포 ‘앞바를 터진목’/ 바다 물살 파랗게 질려/ 아직도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 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 듯 숨어드는데/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위령제령재단 위로/ 뉘 집 혼백인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강중훈의 시 「섬의 우수」전문.

섬사람들은 어디에 있던 바다로 향해 있다. 침략의 위험이 오는 것도 바로 바다이다. ‘섬의 우수’는 바로 4․3의 언어이다. 오늘날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그 해변에서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시며 그 섬을 탈출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르 클레지오의 모리셔스섬과 강중훈의 제주섬은 ‘섬의 우수’라는 동질성으로, 과거 강대국의 침략으로 빚어진 역사적 체험을 문학의 언어로 바꾸기 위한 고통스러운 작업이 계속 전개될 수 있으리라. 고난의 땅 섬에서 언어 찾기는 바로 이 시대 작가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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