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우수

詩(시)로 읽는 4․3(30)

섬의 우수
강중훈

여기 가을 햇살이
예순 두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핏덩이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 건진
수수깡 같은 노파 잔등 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거북이 등짝 같은 눈을 가진 우리들이 바라보네
성산포 ‘앞바를 터진목’
바다 물살 파랗게 질려
아직도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 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 듯 숨어드는데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위령제령재단 위로
뉘 집 혼백인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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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우수(憂愁)’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J.M.G. Le Clézio)가 제주섬에 머물면서 집필한 < 제주기행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유럽 최대잡지 『지오(GEO)』 창간30주년 기념호(2009.3)에 ‘제주매력에 빠진 르 클레지오’란 제목의 글에서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포록과 검정. 섬의 우수를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고 쓰고 있다. 4․3광풍이 온 섬을 휩쓸던 시절, 어디 하나 상처를 입지 않은 마을이 없었다. 성선포도 그랬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해안에서 벌어진 처참한 슬픔과 분노의 역사는 시간과 더불어 뇌 속에서 과연 사라질 것인가? 당시 민병대에 끌려온 주민들이 죽어가면서 봤던 바로 그 터진목에는 ‘제주4․3성산읍희생자위령비’가 일출봉을 등지고 서있고, 그 곁 바다 쪽으로 ‘제주매력에 빠진 르 클레지오’에서 발췌한 글귀가 음각되어 있다. 2007년 11월 8일, 시인 강중훈이 운영하는 민박 ‘해 뜨는 집’에 프랑스 제5채널 TV제작진이 르 클레지오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찾아왔다. 다음해 1월 18일부터 1월 22일까지 그는 ‘해 뜨는 집’을 다시 찾았다. 강중훈과 르 클레지오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르 클레지오의 < 제주기행문>에 끝부분에 강중훈에 관한 사연도 있다.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읽은 시인 강중훈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그의 시 한편 한편이 그 9월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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