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首餘音을 읽다

詩(시)로 읽는 4․3(31)

白首餘音을 읽다
김학선

어찌하다 버릇없이 앙탈을 부렸는지
치도곤을 안기는
할아버지 명아주 지팡이의 나무람이
가을 볕살에 흩어집니다.

서천에 기운 한 생애 속
구레나룻 쓸어내리는 한 서린 음송이
하늘에 매어둔 장자(長子) 불러들이고
보이지 않는 별 떠 있기를 기구하던
모진 세월들.

다시 돌아본들 짧은 영일은 아득하여
지친 눈빛에
천리 먼 저승 길 헤아리다
꼭꼭 눌러 쓴 여한의 흔적을
새로운 듯
가슴에 품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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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이다. 석우(石友) 김경종(金景鍾, 1888~1962)의 『白首餘音』을 북제주문화원에서 백규상(白圭尙)의 번역으로 펴낸 것은 2006년이다. 석우는 노형동에서 태어나 구한말 이후 격동하는 세상의 간난을 한 몸으로 겪으며 사문의 쇠퇴를 한탄한 유림이다. 할아버지의 문재(文才)를 이어받은 시인이 『紗羅峯 詩篇』을 펴낸 것도 2006년이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손자의 깊은 내면의 답변일까?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시인은 시 「민오름 편지」에서 석우의 부인인 여산 송씨(礪山宋氏)) 할머니를 이렇게 회상한다. ‘할머니는 불쏘시개를 얻기 위하여/ 솔바람 등에 업고/ 사랑의 솔잎 애써 모으실 때/ 어린 손주는/ 깍지 낀 채/ 먼 산만 바라다보았습니다.// 한 세상 숨이 찬 나날이/ 강물 되어 흘러간 사이/ 할머니는 아무런 기척이 없으시고/ 머리 희끗한 손주는/ 봉분의 잡풀 베어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할아버지의 명아주 지팡이의 나무람을 가슴에 품고 있다고 고백한다. 석우는 슬하에 창진 효진 한진과 영옥 정랑 5남매를 두었다. 그 중 창진(昌珍)이 4․3여파로 김천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白首餘音』에는 이승만에게 4․3의 진상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적어 보낸 장문의 편지글 「與李承晩書 己丑」과 성토문 「李承晩聲討文 庚寅」과 아들을 잃은 아픔을 토로하는 시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시인이 꾹꾹 눌러 쓴 여한의 흔적이 역사의 아픔인 4․3을 어루만지고 있다.(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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