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뜨르 비행장

詩(시)로 읽는 4․3(36)

정뜨르 비행장
오영호

굉음에 몸서리치며 들플들 손을 잡고
3천 배 오체투지 천만 번 하고 나서
칠십 년 나이테 돌아
막힌 혈을 뚫고 있다

당신은 누구냐
부릅뜬 하얀 눈물
도두봉 봉화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갑자기 더운 피 쏟으며
혼절하는 슬픈 영혼

진실을 파묻어버린
먹물 빛 활주로에
동강 난 4월 바람 광란의 춤사위 끝에
허상의 가면을 벗고
소주잔을 붓고 있다.
——————————————————————–4.3은 생채기가 아니다. 생채기라면 긁힌 흔적일 텐데, 4.3은 긁힌 게 아니다. 뼈가 부러지고 가슴이 망가지고, 혈관이 터지고, 상상하지 못하는 상처투성이를 남겼다. 그 4.3의 멍에를 제주사람은 지니고 산다. 제주공항이 그런 곳이다. 정뜨르비행장은 1942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1944년 5월 준공된 육군서비행장이었다. 일본군의 결7호작전에 따라 모슬포의 알뜨르에 해군비행장, 신촌 진드르의 육군동비행장, 교래리에 비밀비행장이 건설되면서 확장되었다. 1945년 7월 말부터 8월 초에는 일본군 제96사단 병력이 경비를 맡았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이 공항을 인수하였고 최초의 민항기 운항은 1946년 미 군정청 소속 C-47이 서울-광주-제주 노선에 주 2회 취항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뜨르비행장의 역사적 비극은 1948년 4월 3일 민중항쟁부터 시작된다. 미군정과 군경토벌대가 이곳 군비행장으로 끌고 와 민간인을 사살한 후 매장해버렸다. 1948년 12월 말부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주민들을 끌어다가 총살, 암매장했다. 1949년 10월 육군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민간인 249구의 유해가 지상에서 4.5m 깊이, 반원형 구덩이에서 나왔다. 가장 많이 희생된 날은 10월 2일이었다. 일부 희생자들의 몸에는 M1, 칼빈 등 당시 군경이 사용했던 소총 총알이 박혀있었다. 유류품으로는 탄피와 탄두, 버클, 단추, 일본 동전, 고무신을 비롯해 ‘진섭’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알루미늄 숟가락 등 모두 1000여 점이 나왔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500여 명을 연행, 예비 검속했다가 이곳에서 집단학살했다. 총 8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처음에는 프로펠러 군용기가 잔디밭 활주로를 이․착류했다면 지금은 제트기가 아스팔트 활주로를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군인들만 군사적인 목적으로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드나드는 국제공항이다. (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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