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근 해불근

詩(시)로 읽는 4․3(39)
산불근 해불근
강덕환

곱으라, 곱으라 소리칠 새도 없이
살려줍서, 살려줍서 바짓가랑이 잡는 애원도
허공중에 흩어지던 기축년 정월 열엿새
굴 밖으로 끌어낸 스무 남은 사람들
다르르륵 파앙팡팡
새가 되어 날아갔네, 억새가 되어 박혔네
한 톨의 씨도 남겨선 안 된다
담돌에 매다 쳐버린 그 물애기는
날아갔을까, 박혔을까

산불근 해불근의 중산간
잊은 것 같지만, 사라진 것 같지만
상처의 그루터기를 견딘 억새의 촉수
날을 세우고 날을 세우고 빌레를 뚫어 움튼다,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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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면 어음리는 한라산 서북쪽 ‘어림비’ 평원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이다. 4·3 당시에는 어음리라는 하나의 행정단위였고, 그 안에 비매니(夫面洞), 닭우영(鷄園洞), 너산밧, 큰동네, 섯동네, 고지우영, 송아물, 사낭굴 등 자연마을들이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무장대 요구에 따라 ‘왓샤시위’를 했고 식량을 거둬 올려 보냈다. 청년들 중에는 무장대원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낮에는 토벌대 세상, 밤에는 무장대 세상’이었다. 1948년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안에 소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봉성리 구몰동이 무장대에 습격당한 뒷날인 1949년 1월 16일, 토벌대와 민보단이 합동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여 빌레못굴을 발견했다. 빌레못굴 총살극은 가족 중 청년이 입산한 소위 ‘도피자가족’이거나, 토벌대의 주목을 받게 된 사람들이 숨어 지내다 굴이 발각되는 바람에 집단 총살된 사건이다. ‘난리 때는 산불을 해불근(山不近 海不近) 하라’든가, ‘30여 명이 능히 숨어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이 마을에 퍼져 있었다. 산불근 해불근, 산(무장대)에도 가까이 하기 어렵고 바다(토벌대)에도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빌레못굴은 총 길이 11,749m로 용암굴로는 세계 최장이라 하여 천연기념물 342호로 지정돼 있다. 겨우 한사람이 들어갈 만큼의 좁은 입구를 바위가 막고 있었다. 굴의 온기 때문에 겨울철이면 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지만, 주민들은 인근에 산재해 있는 작은 ‘궤’ 정도로 알았지 그처럼 큰 굴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무튼 1949년 1월 16일 굴이 발각됐고 진압군은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총살했다. 특히 이 때 경찰이 서너 살 난 어린이들의 다리를 잡아 머리를 바위에 메쳐 죽였다는 이야기는 진압작전에 동원됐던 민보단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처절함의 상징으로 인근에 회자(膾炙)되고 있었다. 입구가 좁아 잘 눈에 띄지 않는 굴이 어떻게 발각됐으며, 굴 안으로 깊이 도망쳤다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모두가 잡혀 죽었을까. 굴속에는 어음리 주민 뿐 아니라 납읍리, 장전리, 상귀리 등 인근 주민들도 다수 끼어 있었다. 대부분 난리를 피해 숨었던 주민들이었지만, 진압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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