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천 할머니 – 월령리 진아영

詩(시)로 읽는 4․3(40)

무명천 할머니 – 월령리 진아영
허영선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딛는 말들을 할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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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진아영(秦雅英) 할머니(1914~2004)는 4·3사건의 생존 희생자였다. 1914년 태어나 한경면 판포리에서 평범한 삶을 살다가, 1949년1월 12일 신원 불상의 토벌대가 발사한 총에 맞았다. 이 때 그녀의 나이 36세. 그 후 얼굴에 무명천을 두르고 다닌다 해서 ‘무명천 할머니’라 불렸다.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한림 주둔 2연대와 한림지서 경찰들에 의한 토벌이 이뤄졌다. 1949년 1월 12일 판포리에 군경토벌대가 들이닥쳤다. 할머니는 총격으로 턱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아래턱을 완전히 잃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언니와 사촌들이 살던 월령리로 이주했다.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톳을 캐다 팔고 이웃들의 농사를 도우며 약값을 벌고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제대로 씹을 수 없었다. 위장병과 영양실조로 평생 고통 받았다. 결혼도 못 하고, 자식도 갖지 못한 할머니는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2004년 9월 8일,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했다.(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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