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벵디 하늘을 향해

詩(시)로 읽는 4․3(62)

만벵디 하늘을 향해

김진숙

눈물이 헤퍼지는 걸 보면 저들도 아는가 봐

영문도 알지 못하는 총질 창질이 부끄러워

먼 마을 토종개들도 옥타브를 낮추고

봄볕에도 펴지 못한 아우의 살갗처럼

부스럼 배롱나무에 붉은 살점 돋는 사월

만벵디 하늘을 향해 가지 끝을 세우네

관세음 천수로도 닿지 않은 길이 있어

나무도 사람도 돌아오지 못한 길에

육십 년 목젖이 붉은 굴뚝새를 보았네

——————————————————————- 벵듸는 넓은 들판이되 현무암 덩어리가 사방에 퍼져 있어 땅이 도드라진 자리이다. 1950년 8월 4일 도내 4개 경찰서에 예비 검속된 사람은 820여명이다. 8월 20일(음력 7월 7일) 집단 총살되거나 수장 당했다. 그날은 칠월칠석(七月七夕)이다. 은하수의 양 끝 둑에 살고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 칠석이다. 너무나 사랑을 속삭이던 두 별은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1년에 한 번 칠석 전날 밤에 은하수를 건너 만나게 된다. 이 때 까치[작(鵲)]와 까마귀[오(烏)]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한다. 그래서 칠석날 아침에 비가 내리면 견우직녀 상봉의 눈물이요, 저녁에 비가 내리면 이별의 눈물이라 한다. ‘만벵디묘역’은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시신을 1956년 3월 30일 수습해 조성한 묘역이다. 한림면·대정면·안덕면 예비검속자는 총 344명이었고 이들 가운데 252명이 군(해병대)에 송치되었다. 유족들이 몰래 모여 칠성판, 광목, 가마니를 준비하고 새벽 2~3시께에 섯알오름으로 트럭을 몰고 가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했다. 해병대 제3대대 대원들은 경찰로부터 인계받은 예비검속자들을 섯알오름 탄약고 터로 끌고 가 총살하였다. 총살은 두 차례 이뤄졌다. 모슬포 절간고구마 창고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오전 5시에, 한림 어업조합 창고에 수감됐던 사람들은 같은 날 오전 2시에 총살됐다. 총살 당일 유가족 들이 몰려들어 시신을 수습하려 했다. 군인들이 제지해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만벵디묘역에 묻혀있는 이들은 한림항 어업조합 창고, 무릉지서 창고에 갇혔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이 사건의 희생자는 62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만벵디묘역에는 현재 46위가 안장돼 있다. 만벵디묘역의 터는 유족 중 한 명이 무상으로 내놓았다. 당시 유족들은 머리 모양이나 치아, 썩지 않고 남은 옷, 소지품 등으로 일부의 시신을 구별했다. 나머지 132구는 백조일손지묘에 모셔져 있다. “기다림에 지쳐 살과 뼈는 흙으로 돌아가고 체온은 햇볕에게 보태어 야만의 땅엔 날줄과 씨줄로 곱게 엮은 저토록 고운 벌판인데…” (강덕환 시 ‘만벵디’ 中) 제주로 불어닥친 모진 광풍에 스러진 이들에게 현실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이는 결국 ‘기다림에 지쳐 돌아간 이들’이 묻힌 땅의 푸르름이 저토록 고와서는 아닐까.(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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