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월-정강산에서

詩(시)로 읽는 4․3(72)

서강월-정강산에서

마오쩌둥

 국민당 군대의 깃발 산 아래 내려보이고

산 위에서는 홍군의 북소리, 피리소리 요란하게 들리는데

적의 군대 주의를 천겹만겹 둘러싸도

나는 그저 내려다보며 움직이지 않네

일찌감치 방어진 삼엄하게 쳐놓았고

모두가 한 마음이니 금성철벽(金城鐵壁)을 쌓아놓은 듯

황양계(黃洋界)에 박격포소리 진동을 하고 나서

전령의 보고를 접하자니 적들은 밤새 도주해 버렸다고

——————————————————————-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1928년 가을에 시「서강월(西江月)-정강산(井岡山)에서」를 지었다. 마오의 시편들이 지니는 혁명적 서사성 이외에 우리는 주요한 예술적 특점들을 대할 수 있다. 마오는 무(武)와 문(文)을 절묘하게 엮었다. 1920년 11월 중국공산당이 창당되고 1921년 7월 23일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 당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마오는 후난에서 당을 건설하라는 지침을 받고 1921년 8월 창사로 돌아왔다. 1926년 8월 마오는 농민 세력을 규합해 국민당과 합작으로 후난 성의 군벌을 물리치고 창사에 들어가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서강월-정강산에서」에서 ‘정강산’은 호남과 강서 두 성의 경계지역을 가로지르는 나소산맥의 중간에 위치한 산이다. 1928년 마오는 정강산의 모평이라는 곳에서 당 대표회의를 열어 정치문제와 이 지역에서의 당의 임무에 관해 「중국의 홍색정권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결의를 발표하였다. 마오의 홍군은 1930년 10월 창사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공산당의 기세에 위기감을 느낀 국민당은 1927년부터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공세에 밀린 공산당은 ‘경이적인 업적’으로 기록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1934년 10월부터 1935년 6월까지 이어진 대장정 기간 동안 중국공산당은 죽음과 고통으로 가득 찬 악몽 같은 행군을 이어갔다. 마오의 군대는 칭하이와 간쑤의 늪지와 산악 지대를 행군하는 지옥 같은 행군을 이겨냈다. 마오는 1934년 강서성 서금(瑞金)에서 개최된 제2회 전국공동대표회의에서 이렇게 설파하였다. “수천 년 동안 우리를 지배한 봉건황제의 성과 궁전은 견고하지 않았던가? 민중이 떨쳐 일어나면서 속속 무너지고 말았다. 러시아 황제는 세계 제일의 흉포한 황제였지만,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이 일어나자 과연 계속 존재할 수 있었던가? 존재할 수 없었다. 진정한 금성철벽이란 무엇인가. 진정으로 혁명을 옹호하는 몇 천 만의 민중인 것이다.” 1936년 옌안에서 마오와 공산당은 서부 지역에 머무르면서 내부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대장정을 완수한 마오가 분파 투쟁을 종료시키고 당의 지도권을 획득한 시기도 옌안시대였다. 대장정은 마오 개인에게는 당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당 지도력을 확보하기 시작한 마오는 1943년 중국공산당에서 공산당중앙위원회 주석과 정치국 의장을 동시에 겸임하게 되었다. 공산당 총비서는 “이제 중국은 강력하고 위대한 혁명가로서 시련을 이겨낸 진정한 지도자를 갖게 되었다”고 선언했다.(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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