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풍경(戒嚴風景)

詩(시)로 읽는 4․3(73)

계엄풍경(戒嚴風景)

리민용

빗물이

변색된 하늘에서 쏟아진다

진압부대의 방패가

번갯불에 빛을 발하고

무장경찰의 곤봉도

벼락 침에 반짝이고 있다

도시에 하나의 새로운 경계선이 나타났다

한쪽은 비무장의 군중이고

한쪽은 가스 최루탄

민성로(民生路) 민첸로(民權路)에서 민족로(民族路)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습기로

축축한 어두운 밤

————————————————————————————————— 리민용(李敏勇) 시인은 대만시단의 ‘화려한 기수’로 불리며, <시의 영광>, <자백서>, <아마도>, <해엽> 등 이성에 바탕을 둔 역사의식으로 중량감이 내재된 작품을 발표했다. 대만 2.28사건이 벌어진 1947년 태어났다. 1947년 대만의 2.28사건은 1948년 제주4.3과, 1979년 대만의 미려도사건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1945년 10월 25일 중화민국 대표연합군은 대만을 무력으로 접수한다. 이후 중국 본토가 중화민국(국민당)이 중화인민공화국(공산당)으로 대체된 후에, 대만으로 망명한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는 점거통치하고 있던 대만을 반공(反共)과 반격의 기지로 삼았다. 일당화를 추진하고 장기적인 계엄통치를 실시했다. 2.28사건은 1947년 2월 28일 대만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를 일컫는 말이다. 일제식민통치나 다름없던 국민당의 탄압으로 발생했다. 사건은 2월 27일 정부의 전매사업 품목인 담배를 밀수하던 노인이 단속 공무원에게 구타를 당한 것에, 주변의 시민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단속원의 총에 맞아 사망하며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분노한 시민들은 사건 발생지인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대만 전역에서 봉기했으나, 3월 초 군대에 의해 진압 당하며 이 과정에서 2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사제담배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충돌만이 원인은 아니다. 당시 대만은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으나, 연합군 대표 자격으로 들어온 중화민국 중국국민당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대만 본토의 ‘본성인’들은 49년 이후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들어온 대륙의 ‘외성인’들로부터 차별 및 폭압을 받았다. 수사과정에서의 충돌 이전부터 대만인들에게는 폭압에 대한 불만이 내재되었으며, 중국국민당의 점거통치와 행정 부패 등을 타파해야겠다는 민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미군정과 경찰로부터 억압당한 제주도민들의 상황과 흡사하다. 제주4.3은 미군정의 폭압에 대한 도민들의 봉기로 볼 수도 있으나, 그 이전부터 제주도의 젊은 지식인들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정부의 수립을 요구하며 항쟁해왔다.(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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