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항쟁가

詩(시)로 읽는 4․3(74)

인민항쟁가

임화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붉은 깃발을

그 밑에 전사를 맹세한 깃발

더운 피 흘리며 말하던 동무

쟁쟁히 가슴 속 울려온다

동무야 잘 가거라 원한의 길을

복수의 끓는 피 용솟음친다

백색 테러에 쓰러진 동무

원수를 찾아 떨리는 총칼

조국의 자유를 팔려는 원수

무찔러 나가자 인민유격대 ——————————————————————-

임화(林和)는 경향파 시인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을 대표한다. 박헌영에게 매료되어 남로당 노선을 걸었다. 1947년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하였으나 1953년 8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에서 ‘미제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했다. ‘조선 최고의 작곡가’로 알려진 김순남(金順男) 작곡하고 임화가 작사한 ‘남조선 빨치산의 노래’와 박찬모(朴贊謨)가 작사한 ‘제주도 빨치산의 노래’가 잘 알려져 있다. 김봉현·김민주의 『제주도인민들의4·3투쟁사』에는 “그들은 간고하던 항일무장투쟁의 나날들을 회상하며, 또 그때마다 혁명의 각종 노래로써 사기를 돋우며 모든 곤란과 슬픔을 이어나갔다.「제주도빨치산의노래」,「남조선형제를잊지말라」,「전평의노래」,「유격대행진곡」,「나팔수의노래」,「적기가」,「해방의노래」,「추도가」,「민전가」,「인터내쇼날」 등의 혁명가요를 성난 파도와 같이 드높게 부르며, 항쟁의 기량을 불러일으켰다”고 쓰고 있다. 「인민항쟁가」는 김순남이 작곡하여 남·북조선 모두에서 애국가처럼 불리었다. 김순남이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미군정의 식량정책의 실정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발발한 대구10월사건(十月事件)을 기리기 위해 1946년 작곡한 노래이다. 미군정은 계엄령을 내리고 친일경찰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하여 잔인하게 진압했다. 김순남도 「인민항쟁가」를 작곡하여 체포령이 내려지자 월북했다. 남한에서는 80년대 이후 일부 운동권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며 KBS 교향악단이 노래를 연주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제주4·3 추모앨범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임화가 작사하고 김순남이 노래한 「해방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 보아라/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 날을/ 시위자가 울리는 발굽 소리와/ 미래를 고하는 아우성 소리// 노동자와 농민들은 힘을 다하여/ 놈들에게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 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 제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 (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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