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선은 25시에 떠나네

詩(시)로 읽는 4․3(75)

밀항선은 25시에 떠나네

김성주

오사카로 가는

밀항선은 25시에 떠나네

정뜨르비행장으로 끌려간 아비

이호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쓰러진 어미

둘둘 말은 총소리를 품고 큰아버지가 떠나네

월남으로 가는

군함은 정오에 떠났다네

가슴에 매달린 훈장보다

통장에 찍힐 숫자의 꿈을 품고

태극기 물결을 누비며 작은아버지는 떠났다네

오사카로 가는

밀항선은 25시에 떠나네

그 사내

천둥번개의 밤바다에 재물이 됐다고

이쿠노쿠 뒷골목 공장에서 손가락 두 개 잘렸다고

북송선을 탔다고

총알 탄 소문들이 나를 조준하네

하롱베이로 가는

비행기는 정오에 떠난다네

베트남 정글을 누비던 맹호

여지없이 쓰러지던 사냥감들

오사카로 가는

밀항선은 25시에 떠나네

——————————————————————–그 시절 제주사람들은 환난을 피하여 밀항선을 탔다. 해방이 되어 환국한 사람들이 다시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그 밀항선이 25시에 떠난다. ‘25시’는 1949년 발표된 C.V. 게오르규의 소설 제목이다. 하루의 24시간이 모두 끝나고도 영원히 다음날 아침이 오지 않고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는 최후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25시는 현재의 시간일 수 있다. 옛 제주도 관문인 제주항 산지부두는 떠나는 사람들을 눈물로 배웅하는 이별의 장소였다. 그 시절 환난을 피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주항을 통해 들고났을까? 누군가는 죽음을 피하여 떠났고 누군가는 이별을 슬퍼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컴컴한 어둠에 영문도 모르고 실려 나간 이후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 제주항 맞은편 주정공장에 잡혀있던 사람들이다. 주정공장은 당시 수용소로 활용되었다. 산지항은 군법회의에 의해 육지부 형무소로 끌려가는 도민들이 떠났던 바로 그 곳이다. 목포로 대전으로 인천으로 부산으로 끌려갔던 사람들. 다수가 산지항에서 배에 태워져 바다에 수장되기도 하였다. 특히 1948년 겨울 희생자의 시신이 사라봉 인근으로 떠올랐다는 증언도 있다. 1950년 예비검속 수감자들이 산지항을 통해 바다에 실려나가 수장되었다는 증언도 있다.(김관후 작가․ 칼럼니스트)

이 글은 카테고리: 글 전체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