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시(詩)

정치인 말은 대개 숭고하고 높다. 아니, 그러려고 애쓴다. 그러나 가식인 경우가 많다. 야비한 언어와 욕설에 가까운 말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게 오히려 선명성을 높인다고 착각한다. 그건 풍자와 조롱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저주의 언어들이다. 시의 언어는 공감의 언어이다. 정치의 언어도 공감을 추구해야 한다. 김태석 의원이 도의회의장 시절, 축사 대신 詩낭송으로 ‘화제’를 모았다. 각종 행사장에서 축사나 인사말을 시로 대신하면서 참석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과 최두석 시인의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등, 그의 시낭송 이력은 다양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열린 날,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이육사의 시 〈절정〉을 언급, 눈길을 끌었다. 〈절정〉에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 수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저항의식이 담겨있다. “이육사의 외침!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며 이육사의 시 절정을 인용했다. 또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후 정호승의 시〈산산조각〉을 공유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은 현역 국회의원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세한도〉 시를 쓴다. 전교조 해직 교사로 지내던 시기다. 추사와 동일시하며 그와 같은 겸허한 삶의 자세로 살아가겠다는 각오와 다짐이다. 시인은 추운 겨울로 표현된 시련을 견뎌 내는 새와 나무들에서 연민과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기약이 없는 추위(시련)를 걱정한다. 정치와 시는 예전부터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었다. 밀고 당기는,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관계였다. 1970~80년대 우리 시인들은 무도한 권력에 치열하게 맞섰다. 반면 정치인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소설가를 언제나 가까이 두고 싶어 했다. 요즘 한국과 미국의 정치 한복판에서 주목받는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란히 시를 ‘동원’하는 현상은 그래서 새삼스럽지 않다. 중국은 우주 개발을 ‘마오의 꿈’과 연결 짓고 있다. 달 탐사선 창어(嫦娥) 5호가 달 토양 표본 채취 임무를 마치고 네이멍구에 착륙했다. 이를 마오쩌둥(毛澤東)과 연결하면서 마오쩌둥이 쓴 시 〈수조가두 중상정강산(水中歌頭 重上井岡山)〉에 나오는 “구천에 날아올라 달을 따다”를 인용하였다. “可上九天揽月(구천에 올라 달을 따고)/ 可下五洋捉鳖(오대양에 내려가 자라를 잡으며)/ 谈笑凯歌还(담소하며 개선의 노래 부르며 돌아오니)/ 世上无难事(세상에는 어려운 일 없네)/ 只要肯登攀(다만 기꺼이 산에 오를 밖에)” ‘20세기 완전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Che Guevara)는 위대한 혁명가이자 가슴 속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서정을 품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쿠바로 건너간 그는 카스트로와의 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정부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게릴라 전투기간 동안에도 그의 배낭 속에는 언제나 괴테,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네루다, 레닌 등의 책들이 떠나질 않았다. 체 게바라의 유언. “난,/ 지금/ 혁명의 불멸성을/생각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 당선인은 아일랜드의 노벨상 수상 시인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히니의 〈트로이의 치유(The Cure at Troy)〉는 아예 선거 캠페인 영상에도 활용했다. 한국인에게 소월의 어떤 시가 그렇듯, 아일랜드인들에겐 그들의 시인 세이머스 히니(Seamus Heaneyㆍ95년 노벨 문학상)의 희곡 ‘트로이 해법 The Cure at Troy)’이 아주 유명하다. 사의를 표명한 뒤 침묵을 이어가던 추미애 장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짧은 글을 올렸다. 자신의 페이스 북에 “그날이 쉽게 오지 않음을 알았어도 또한 그날이 꼭 와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고 적었다.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복귀를 결정한 뒤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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